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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규씨는 역사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박헌영과 김일성의 2차 회동이 바로 박의 급선회의 배경이었다고 처음으로 공개하고 있다. 『박헌영은 신탁통치 문제로 45년12월28일 밤 38선을 넘어 29일 오후 평양에 도착했고 신탁통치 문제와 기타 전반적 사항에 관해 김일성 및 분국간부들과 논의한 뒤 46년 1월2일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 조선공산당은 찬탁 성명을 냈습니다.』 박헌영이 1차 때와 달리 2차 때는 김일성에게 회동을 요구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서씨의 증언. 『당시 사정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신탁통치 결정이 서울에 알려진 뒤였는데도 평양에는





오후 평양에 도착했다. 조선공산당 서기국원 김태준, 서울대 교수이며 이론가인 박치우 등 4명이 동행했다. 김일성이 주령하·김용범·박정애·허가이 등 분국간부들과 평양교외까지 나와 「당 중앙」을 영접했다. 도착은 했지만 막 바로 현안논의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googletag.cmd.push(function() { googletag.defineSlot('/65120695/m_view3', [320,





실시하기로 했다. 후견세는 신탁통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박의 의견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결정된 내용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남아있는 일은 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31일 오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분국의 17명 상무위원이 참가한 집행의 상무위원회가 열렸다. (서씨에 따르면 이 회의는 북한에서 4차 확대 집행회의라고』불린다.) 서씨의 증언. 『먼저 당 조직부국장 허가이가 삼상회의 결정을 보고했습니다.(허는 3차 확대 집행위에서 부국장으로 선출됐다.) 이어 신탁통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당과 근로



소식은 전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목소리갰반탁』(신탁통치 반대)으로 모아졌다. 정태식 등 조선 공산당의 몇몇 간부들은 『만일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가 사실이라고 하면 우리는 절대로 반대한다. 5년은 커녕 다섯 달이라도 반대한다』고 했다. 박헌영은 공식의견을 말하지 않았지만 항상 『하루빨리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고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매진할 것』을 역설해 왔기 때문에 그 역시 반대하는 것으로





서울중앙이 왜 반탁조치를 내렸는가 설명했다. 수습책을 포함해서 신탁통치 문제는 로마넨코가 평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인 기일에 가서나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로마넨코는 30일 영사 발리얀 스키와 평양으로 돌아왔다. 서씨의 증언. 『로마넨코는 박헌영과 김일성을 만나 신탁통치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로마넨코는 「미국이 신탁통치를 주장해, 하는 수 없이 절충안으로 5년간 후 견제를



100], 'div-gpt-ad-1571364010595-0').addService(googletag.pubads()); }); 소련의 의도를 설명해주어야 할 군정의 민정사령관 로마넨코 아직 평양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평양에 도착한 당일 박-김 회동은 개괄적인 남북정세 교환 및 입장전개에 그쳤다. 서시의 증언. 『사일 회동에서 김일성은

상황은 급변했다. 반대입장을 견지하던 조선공산당이 느닷없이 『신탁통치는 일제의 침략과는 다른 것』이라며 『민족이 통일하여 5년이라는 기한을 단축하자』는 성명을 냈다. 신탁통치를 찬성한다는 말이었다. 반탁일색이던 이남의 우익은 당연히 비난에 나섰다. 조선공산당의 급선회로 남쪽은 격렬한 좌우대립의 수라장으로 변해갔다. 반탁의 한 목소리로 모이는 듯 했던 좌우는 완전히 결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남과 이북을 반탁과 찬탁진영으로 확연히 갈라놓고 말았다. 찬탁과 반탁의 극렬 대립은 신탁통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 문제에 이어 중점적으로 논의된 것은 삼상회의 두 번째 결정인 임시정부 구성문제였다. 계속되는 서씨의 증언. 『이 논의에서는 임시정부 구성의 원칙이 마련됐습니다. 공산주의 세력과 기타세력의 비율을 2대1로 한다는 것이었죠. 이북의 분국과 이남의 좌익세력이 각각 별개의 세력으로 임시정부에 들어가고 이남의 우익 등 나머지 세력은 하나의 세력으로만 인정해 임시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었죠. 한마디로 공산당이 임시정부를 리드하자는

닥쳤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 방침이 서방통신을 타고 전해진 것이었다. 결정사항은 4개였다. 첫째 , 한반도의 이남과 이북지역을 즉시 통합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둘째 , 민주단체와 협의하여 임시정부를 조기에 수립한다. 셋째 , 신탁통치의 조건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임시정부와 협의하여 결정한다. 넷째 , 신탁통치 기간은 최고 5년 이내로 종결한다는 것이었다. 독립정부 수립이 유보되고 다시 신탁통치를 받게 된다는

유희관이 큰 경기 안 통하는 건 스트라이크 존 영향이 크죠. 어제자 해피투게더에서 송진우가 이병헌 춤따라하는거 북한 독재 괴물 인민공화국.20편.북한건국과정.역사 이병헌 따라하는 배우.gif 송진우 배우 송진우의 이병헌 성대모사 팀동료 중에 아빠가 선수인 친구 있으면 ㄹㅇ 부러울거같지않아?? 이시언 친구 송진우 닮은꼴 슈가맨3 태사자 '도' 뮤비 (병맛 ver.) f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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